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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계

  • 구상선생기념사업회
  • 2019년 11월 12일
  • 2분 분량



세계 2백대 문인의 반열에 오르며 우리나라의 현대 시단에 큰 족적을 남긴 구상 시인.

낙동강을 끼고 있는 왜관은 구상 시인에게 시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었으며 젖줄이었다.

이렇듯 왜관은 그의 삶과 문학 그리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채워 온 고향이었다.


그리스도 폴의 모습으로 살아간 시인 구상


-세계 200대 문인에 선정된 시인 구상


문화적인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시인 구상(1919년 ~ 2004년)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에서 펴낸 시집 ‘응향' 필화사건에 휘말려 월남한 후 연작시 '강', '모과옹두리에도 사연이', ' ‘시집 구상', ‘초토(焦土)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타버린 땅', ‘유치찬란', ‘밭과 강',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등 10여 권이 넘는 시집과 수상집, 수필집 등을 펴냈으며 팔순에 다다른 시기에도 시집 ‘인류의 맹점(盲點)' 을 발표해 문학에 대한 열정과 정갈한 노시인의 깊이를 보여줬다.

구상시인의 작품은 일찍부터 불어와 영어, 독어,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각국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상의 문학세계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걸레처럼 더럽고 추례한 내 마음을 그 물에 헹구고 씻고 빨아 보지만 절고 찌들은 때들은 빠지지 않는다. '근황' 중에서 -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성찰의 시다. 구상시인은 이렇게 평생을 기독교적 존재관으로 살며 그것을 투명한 시적예지로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건국신화와 선불교적 명상, 노장사상까지 포용하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에 두고 시를 써왔다. 맑고 투명한, 거기에다 사상적 통합을 시로써 이루어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노래하는 구도자


구상 시인은 또 하나 남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너무나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때문인지 문학은 항상 인생의 부차적인 것이요, 주된 것은 종교, 즉 구도요, 그 생활이었다. 그래서 구상 시인은 일본에 가서 대학에 입학할 때도 명치대학 문예과와 일본대학 종교과에 모두 합격하였는데 결국 종교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신심을 가다듬기 위하여 복음의 묵상서《나자렛예수》와 신심시선《말씀의 실상》을 펴냈다.


-문학가의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구상 시인은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은 어머니로부터 길러진 것 같다고 한다.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 한문의 기초과정과 고시조, 신소설, 한글 토가 달린 삼국지연의, 수호지, 옥루몽 등 중국 소설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머니는 멋도 모르는 구상 시인에게 자신이 소설의 줄거리나 그 재미있는 대목을 곧잘 들려주었고, 또 시조도 이것저것 따로 외게 했다. 이러한 조기 교육으로 구상 시인은 보통학교에 들어가서 조선어(즉 국어) 과목이나 글짓기, 이야기 시간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사람이 공기나 물만 마시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염소의 뱃속에는 기계장치가 있어 그 똥이 검정콩알처럼 둥글둥글하게 되어 나온다!' 등 어린이들이 다 함께 갖는 공상이지만 구상 시인은 그런 것을 너무나 수월하게 현실화하여 천진하게 써내기도 하고, 이야기도 만들어 냈다. 그만큼 문학가로서의 자질이 풍부한 것으로 이것은 바로 어머니로부터 길러진 것이다.


-강, 나의 회심의 일터


구상 시인은 산보다 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시인이 자란 원산시 외곽에 있던 덕원이라는 마을 앞에는 마식령산맥으로부터 흘러와 송도원 바다로 흘러가는 적전강이 있었는데 구상 시인은 이 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해방감을 맛 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상 시인이 장성해 가면서 일반적인 경치나 풍정으로써의 강보다 인식의 대상으로써 강을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스도 폴이라는 가톨릭 성인의 설화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싯다르타》를 접한 게 영향이다. 거기 주인공들은 강을 회심의 수도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저러한 강에 대한 상념이 시인으로 하여금 강을 연작시의 소재로 삼게 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시인이 여의도에 살아 날마다 한강을 마주하고 있고, 시골집도 왜관이라 낙동강을 자주 접하는데서 오는 친근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은<강> 60편을 완성하면서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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